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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에서 국경이 사라진다

대한민국 이주사회 전환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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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이 나라는 자꾸 무언가를 감추려 한다. 줄어드는 숫자를 보며 '정책'을 이야기하지만, 그 줄어드는 사람들 사이에 '누가 살고 있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출산율이 0.72란다. 여기서 태어날 아이가 없단다. 그리고 경북, 내가 사는 이곳은 그 통계 속에서도 가장 먼저 사라지는 쪽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경북은 지금, 가장 먼저 '변화'하고 있는 지역이다. 시작은 조용했다. 누군가는 "외국인을 받자"고 말했고, 또 누군가는 "지방정부가 비자를 설계하겠다"고 말했다. 그때 사람들은 웃었다. 비자는 국가의 고유 권한이 아니냐고. 맞다. 그래서 나는 묻는다. "국가는 도대체 무엇을 설계해왔는가?" 경북은 기다리지 않았다. 2023년, '외국인공동체과'를 만들었다. 지방에 그런 과(科)가 왜 필요하냐고 했지만, 우리는 알고 있었다. 지금은 '이주사회'를 준비할 시간이라는 것을. 나는 말한다. 이주사회란, 이주민을 환영하는 사회가 아니다. 그들과 함께 설계하는 사회다. 봉화군이라는 작고 낡은 지도 위의 이름에 우리는 새로운 좌표를 찍었다. 'K-베트남밸리'. 리황조의 후손이 살아 있는 이곳에, 한-베 이주 공동체를 세우고자 한다. "이게 지방의 일이냐?" 그래. 지방의 일이다. 국경을 국경이 아닌 것으로 만드는 일은 가장 먼저 고립된 곳에서 시작되는 법이다. 경북은 외쳤다. "우리는 외국인을 공동체로 설계하겠다." 그 말은 곧 '광역비자'라는 제도로 태어났다. 그리고 전국 최초로 국회에 법안을 제출했다. 누군가는 그랬다. "지방이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느냐." 나는 묻는다. 국가는 그 일을 해본 적이 있는가? 우리는 K-드림외국인지원센터를 세웠다. 외국인이 병원에 가고, 학교에 가고, 상담을 받고, 공공문서를 한국어가 아닌 언어로 이해하는 세상. 그것이 시작이었다. 우리는 경북형(K) 초청장학생 제도(GKS, Global Korea Scholarship)를 만들었다. K-GKS. 외국인 유학생이 '대한민국의 지방대학'을 선택할 수 있는 이유를 제공했다. 이것은 단지 유학 프로그램이 아니라, "지방에 온 사람이 다시 떠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장치였다. 경북은 선언했다. "글로벌 이주사회로의 전환은 필연이다." 그리고 이 말은 단지 정책 브리핑이 아닌 삶의 방식이 되었다. 우리는 공간을 바꿀 것이다. 행정구역이 아니라, 사회구역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한 면(面)이 외국인과 선주민이 함께 사는 '명예면'이 되고, 고려인, 베트남인, 우즈베키스탄인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경청 포럼을 열 계획이다. 이것이 정주의 시작이다. 정주는 거주지가 아니다. 정주는 말할 수 있는 권리이고, 들어줄 수 있는 관계이며, 다툴 수 있는 생활이다. 우리는 병원을 만들고, 한국어 학습장을 만들고, 이주배경학생을 위한 특별교육지구를 만들었다. '글로벌 빌리지'는 우리가 붙인 이름이다. 빈집이 남아 있는 동네에, 이주민이 살고, 그 아이가 학교에 다니고, 그 아이의 부모가 이웃과 인사하며 한국어를 배우고, 지역의 역사도 함께 배우는 그런 마을. 나는 이걸 '시민권 없는 시민들의 마을'이라 부른다. 하지만 언젠가는 시민권을 갖게 될 것이다. 아니, 시민권이 없어도 이미 시민답게 살아갈 권리를 갖게 될 것이다. 정책은 숫자를 말하지만, 나는 사람을 본다. 한 아이가 "내가 자란 곳은 경북입니다"라고 말할 때, 그 아이는 경북의 주민이다. 그가 외국 국적을 가졌든 아니든, 그가 학교를 다녔고, 친구를 가졌고, 방과 후 돌아갈 집이 있었다면, 그는 이미 이 땅의 일부다. 이주사회는 계획이 아니다. 이주사회는 이미 시작된 현실이다. 우리는 그 사실을 늦게 깨달았다. 그러나 늦게 깨달았다고 해서 계속 외면할 수는 없다. 그래서 경북은 묻는다. 국가는 어디까지 이 현실을 인정할 준비가 되었는가? 지금 우리는 특별법을 제안한다. "대한민국 이주사회 대전환 촉진 특별법". 이 법은 단지 권한 이전을 말하지 않는다. 이 법은 권한을 지방으로 돌려주는 대신, 책임을 함께 나누자는 제안이다. 중앙이 표준을 정하고, 지방이 정책을 설계하고, 서로가 조율하며, '공동사무화'를 실현하는 체계. 이것은 연방제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단방제도 아니다. 이것은 국가 설계의 '지방 확장형 모델'이다. 비자 발급권한을 공유하자고 말하면 사람들은 말한다. "이주민이 지역에 너무 많아지지 않겠느냐." 나는 말한다. "지금 이주민이 없으면 지역은 텅 빈다." 문제는 숫자가 아니다. 문제는 설계의 권한이다. 지방이 사람을 설계할 수 없는 사회, 그것이야말로 가장 정교한 '소멸'의 구조다. 우리는 이제 이주민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받아야 한다.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고, 우리가 먼저 설계하고, 우리가 먼저 환영할 뿐 아니라, 함께 살아갈 구조를 만들겠다고 말해야 한다. 이것이 경북이 말하는 '전환'이다. 나는 설계도를 꺼내들었다. 그 설계도에는 국경이 없다. 대신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만 있다. 나는 그 위에 썼다. "경북에서 국경이 사라진다." 그리고 그 문장은, 곧 대한민국 전체로 확장될 것이다.

2024.03.26.(화)
호명읍 산합리 연구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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