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지방소멸 위기는 이제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현실이 되고 있다. 특히 농어촌 지역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정부는 이러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도입하고 있으며, 그중 하나가 '지역특화형 비자' 제도이다. 지역특화형 비자는 우수인재에게 발급하는 F-2-R(유형1)과 외국국적동포에게 발급하는 F-4-R(유형2)로 구분된다. 이중 F-4-R은 인구감소지역에 외국국적동 포들의 유입과 정착을 유도함으로써 지역경제 활성화와 인구문제 해결을 도모하는 정책으로서 지방자치단체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구소련 지역에서 강제이주의 아픔을 겪었던 고려인동포들에게 F-4-R 비자는 모국으로의 귀환과 안정적 정착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독립운동과 일제강점기 강제이주라는 역사적 상처를 안고 있는 고려인 동포들의 모국 정착은 단순한 외국인력 유치를 넘어 역사적 화해와 민족적 통합의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현행 지역특화형 F-4-R 비자 제도는 고려인 동포 '가족'의 온전한 정착을 지원하기에는 여전히 미흡한 점이 많다. 영천시고려인통합지원센터 장성우 센터장은 "법무부가 지역특화형 비자 제도를 설계하고 시행했지만, 현장의 지자체들은 이를 수용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며 정책과 현실의 괴리를 지적한다. F-4-R은 일반 재외동포(F-4) 비자보다 더 넓은 취업 기회를 제공한다. 일반 F-4 비자가 단순노무분야 취업을 제한하는 반면, F-4-R은 추천 지역이 속한 광역자치단체 내에서 단순노무를 포함한 거의 모든 분야의 취업활동을 허용한다. 그러나 문제는 F-4-R 소지자의 배우자와 자녀에게 발급되는 F-1-9R 비자에 있다. 이 비자는 원칙적으로 취업 활동이 금지되며, 제한적으로 출입국·외국인관서에 '체류자격 외 활동허가'를 받아 단순노무 분야에 한해 취업이 가능하다. "일자리만 있으면 됩니다. 그분들 제일 중요한 건 일자리예요. 근데 일자리가 안 되다 보니까 기다려야 되고, 그거 기다리다 보니까 힘이 다 빠져서 다른 지역으로 가게 됩니다." 장성우 센터장의 말처럼, 영천시에서는 F-1 비자를 가진 고려인 가족들이 취업 제한으로 생계 유지가 곤란해 다른 지역으로 이주 하거나 본국으로 돌아가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이나 농어업 분야의 임금 수준으로는 한 사람의 소득만으로 가족의 생활비와 자녀 양육비, 주거비 등을 충당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더욱이 F-1-9R 배우자 중에는 전문 기술이나 경력을 보유 했음에도 불구하고 단순노무 외에는 취업이 제한되어 인적자원이 낭비되는 안타까운 상황이 많다. 지방소멸 위기 극복과 고려인 동포 가족의 안정적 정착이라는 두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가족'을 하나의 단위로 인식하고 포용하는 정책적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F-1 배우자를 '취업 제한의 대상'이 아닌 '지역 활성화의 동반자'로 바라보는 시각이 절실하다. 인구감소와 지역소멸 위기는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다. 정부는 지역특화형 비자 제도를 도입하여 외국 국적 동포들의 지방 정착을 유도하는 첫 걸음을 내디뎠다. 그러나 영천시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현장에서는 여전히 고려인동포 가족, 특히 F-1 비자를 소지한 배우자들의 취업 제한으로 인해 안정적 정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역특화형 비자 제도가 진정한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동포 '개인'이 아닌 '가족' 전체를 지원하는 더 섬세하고 포용적인 정책적 관심이 필요하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기업과 시민사회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 비로소 인구감소의 악순환을 끊고 지역 재생의 선순환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2025.04.16.(목)
호명읍 山合里 연구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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