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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가족이었다

고려인동포 취업제한의 비극과 침묵의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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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일하고 있었다. 나는 그를 '가족'이라 불렀다. 하지만 제도는 그를 '비취업자'라 불렀다. 그는 일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일하고 싶은 사람이었고, 일해야만 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에겐 허락이 필요했다. 나는 이 문장에서 멈췄다. '허락이 필요한 노동'이라는 말을 듣고, 나는 오래된 책들을 떠올렸다. 1930년대의 식민지 조선, 허가증이 필요한 외국인 노동자들, 그리고 지금, 2025년의 대한민국 경북 영천. 그곳에 고려인이 있었다. 그는 이 땅에 돌아온 '조선인'이었고, 또한 '외국인'이었다. 그는 조국에 돌아온 가족이었고, 조국은 그에게 허가를 요구했다. 나는 질문한다. 우리는 누구를 이 땅에 환영하는가? 그리고 누구에게 침묵하는가? 그는 가족이었다. 그는 한 가정의 배우자였고, 두 아이의 아버지였고, 한 어머니의 딸이었다. 그러나 그는 일할 수 없었다. 'F-1-9R'이라는 이름을 가진 체류자격은 그를 '함께 사는 자'로 만들었지만, '함께 일하는 자'로는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이 아이러니에 오래 멈췄다. 가족이 되어야만 올 수 있었지만, 가족이 되었기에 일할 수 없었다. 정책은 말한다. "이민은 인력난을 해소할 것입니다." 그러나 또 말한다. "동반 가족은 노동력이 아닙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묻는다. 당신들이 말한 '이민'은 도대체 누구인가? 영천의 공장에서는 사람이 부족했다. 영천의 마을에서는 사람이 줄고 있었다. 아이들은 떠났고, 노인은 남았다. 그리고 그 틈에 고려인이 있었다. 그러나 이 나라는 '사람'만을 원했다. '개인'만을 설계했고, '가족'은 설계하지 않았다. 나는 고려인을 본다. 그는 '역사'였다. 그는 강제이주의 후손이었고, 일제의 망명자였고, 러시아의 조선인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는 한국의 이방인이 되었다. 나는 이 모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오래 고민했다. '모국'이 만든 제도 안에서, 가족은 다시 쪼개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F-4-R. 정책은 그를 '열어준 비자'라 부른다. 취업이 자유롭고, 정착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일할 수 없었다. 그의 남편은 출입국사무소에 '허가'를 받아야 했다. 허가를 받아도, 오직 단순노무에 한정되었다. 그는 통역사였다. 그는 간호사였다. 그는 미용사였다. 그는 손재주가 있었다. 그는 공장을 운영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한국은 말했다. "당신은 단순노무 외에는 허락되지 않습니다." 나는 경악하지 않았다. 익숙했기 때문이다. 이 나라는 능력을 묻지 않고, 신분을 묻기 때문이다. 정책은 말했다. "우리는 외국인 동포를 정착시키겠다." 그러나 현실은 말했다. "가족은 돌아가야 했다." 영천시고려인통합지원센터의 장성우는 말했다. "일자리가 있으면 됩니다. 가장 절실한 건 일자립니다. 그런데 그게 안 됩니다. 기다리다 떠나버립니다." 그 말은 슬펐다. 사람이 떠난 게 아니라, 정책이 사람을 밀어낸 것이다. 그들은 온전히 살고 싶었다. 함께 일하고, 함께 벌고, 함께 아이를 키우고 싶었다. 그러나 법은 말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이것은 정책의 결핍이 아니다. 이것은 정책의 무책임이다. 설계하지 않은 결과는 자연이 아니라 방치다. 그리고 방치는, 가장 폭력적인 형태의 침묵이다. 나는 그 침묵을 해석하고 싶었다. 왜 우리는 가족을 단위로 보지 않는가? 왜 '이민정책'은 늘 개인에게만 설계되는가? 왜 배우자는 '동반자'로만 존재하고, '기여자'가 되지 못하는가? 나는 이 정책의 언어를 뜯어본다. 그리고 그 언어에서 공포를 본다. 가족을 받아들이면 정착할까 봐, 정착하면 요구할까 봐, 요구하면 시민이 될까 봐. 그래서 정책은 가족을 비가시적 존재로 만든다. 나는 말하고 싶다. 고려인 가족은 가족이다. 그들은 집이 필요하고, 수입이 필요하고, 존중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중에서 '일할 수 있는 권리'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다. 나는 제안한다. F-1 비자 제도의 전면 재설계. 동반 배우자의 취업 제한을 폐지하고, 가족 단위의 이민 설계를 시작하자. 그것은 단지 고려인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방을 위한 일이다. 지방은 사람이 필요하다. 그러나 사람은 혼자 오지 않는다. 그들은 가족으로 온다. 그렇다면 정책도 가족을 중심으로 설계해야 한다. 나는 이 칼럼의 제목을 "그들은 가족이었다"고 썼다. 왜냐하면 정책은 그 사실을 잊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금도 가족이고, 가족으로 살고 싶어 한다. 그리고 가족이 되면 함께 살아갈 수 있다. 이 단순한 진실을, 이제는 정책이 말해야 한다.

2025.05.01.(목)
호명읍 山合里 연구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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